5/11/2016

에덴의 동쪽 사이클로크로스 라이드




존 스타인벡이 소설 ‘에덴의 동쪽’을 쓸 때 처음 생각했던 책의 제목은 ‘살리나스 밸리’ 였다. 이 책의 첫장은 살리나스 밸리의 지리와 역사에 대한 서술로 시작한다.
“처음 이곳에는 발명도 문화도 없는 열등한 족속들, 인디언들이 있었다.  사냥이나 고기잡이를 하기에도 너무 게을러서 애벌레와 메뚜기와 조개나 갑각류를 먹고 살았다. 이들은 주울 수 있는 것만 먹을 뿐 아무것도 심지 않았다.  떫은 도토리를 빻아 가루를 만들었다.  그들의 전쟁조차도 맥빠진 판토마임이었다.”
분노의 포도를 썼던 작가 스타인벡의 북미원주민들에 대한 관점이다.  1952년에 쓰여진 글이니 수렵채취 사회의 인류가 농경인류에 비해 더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이었을 것이다.   마틴 루터 킹의 워싱턴 DC 연설은 11년 후에나 이루어진다.  그전까지는 문명과 인권은 백인만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스타인벡은 도토리묵을 먹어본 적이 없었을테니 이 훌륭한 음식의 가치를 모른다. 도토리는 떫은 맛을 내는 탄닌만 제거하면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을 포함하여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갖춘 완전식품이다.
“그 다음엔 강인하고 무정한 스페인 사람들이 와서 탐험을 하고 다녔다.  탐욕스럽고 현실적이었던 그들의 탐욕은 황금 또는 신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보석을 수집하듯 영혼을 수집했다.”
수렵채취 인류가 줄곧 살던 땅에 1769년 후니페로 세라(Junipero Serra)’라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사를 앞세운 스페인의 군대가 들어온다. 알라스카부터 남하하는 러시아에 위협을 느낀 스페인이 알타 캘리포니아(Alta California)의 식민지 권리를 확보하려는 목적이었다. 그 방법은 원주민들을 개종시켜 스페인 왕의 신민을 만드는 것이었다.  샌디에고에서 시작하여 샌프란시스코까지의 주요 거점에 미션을 짓고원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살게 했다.  미션과 그에 딸린 토지는 수도회의 재산이 되었고 미션인디언들은 그 땅의 노예가 되었다.  그 미션들을 잇는 길을 ‘왕의 길’(El Camino Real)이라고 불렀다. 미션 인디안들은‘야만’의 풍습과 언어를 버리고 백인들이 유럽에서 데려온 신을 믿어야 했고 스페인어를 배워야 했다. 미션에서 도망친 자들은 군대를 풀어서 잡아다 ‘자식’처럼 때려서 훈육했다.

세라는 육체를 벌하는 것이 영혼을 정화한다고 믿어 수도복 속에 가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자다가도 죄스러운 생각이 일어나면 스스로에게 매질을 할 수 있도록 갈고리 달린 쇠사슬을 침대 곁에 두고 살았다고 한다.  자식을 때려본 적이 없던 원주민들은 아버지라는 가톨릭신부들이 때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집당한 영혼의75%가 새로운 생활에 대한 부적응과 면역력이 없던 유럽산 질병에 걸려 죽어갔다.

이 프란시스칸 수사는 북미 원주민들의 머릿속에 중동 유목민의 신을 주입한 공로를 인정받아 훗날1988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2015년 프란시스코 교황의 미국방문을 맞아 시성되었다.

에덴의 동쪽 이야기는 살리나스 밸리의 도시 킹 시티(King City) 동쪽 산기슭에서 시작된다.  소설의 화자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존 스타인벡 자신이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2대에 걸쳐서 카인과 아벨의 모티브를 반복하는 허구의 아담 트래스크 가족이지만 스타인벡의 외할아버지 새뮤얼 해밀턴(Samuel Hamilton)과 어머니 올리브 해밀턴 (Olive Hamilton)은 실명으로 등장한다.

소설엔 화자 자신의 소년시절 경험도 나온다.  독일인 증오가 한창이던 1차 세계대전 당시 어린 누이와 함께 이웃의 독일인에게 “카이저 만세!(Hoch der Kaiser!)”라고 외쳤던 일이다. 그 독일인은 뭔가 말을 하려고 하다가 그만 울음을 터트려버렸고 그제서야 아이들은 자기들이 어떤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작가는 그 부끄러운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식은 땀이 나고 목구멍이 뻣뻣해진다고 썼다.  상상과 실화를 맘대로 오가는 것은 작가의 권리이지만 이 대목은 작가의 자전적 고백일 것으로 짐작한다.

자전거 라이드는 킹시티의 수퍼마켓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서쪽으로 파인 캐년(Pine Canyon)을 따라 스타인벡이 “어둡고 우울하고 쌀쌀맞고 위험하다고” 표현한 산타 루시아 (Santa Lucia)산맥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한다. 에덴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면 에덴이 나올 터이다. 세라핌과 케루빔이 불칼을 들고 지식의 나무를 지키고 있는 무시무시한 그 곳.
“골짜기 동쪽의 가빌란 산맥은 밝고 햇볕과 사랑을 가득한 일종의 초청을 해주는 곳이어서 사랑하는 어머니의 무릎에 오르고 싶듯 그 따뜻한 산자락에 오르고 싶어진다. 이 산들은 갈색 초원의 사랑으로 손짓하여 부른다. 서쪽 하늘에 버티고 선 산타 루시아 산맥은 망망대해로부터 골짜기를 막아준다.  이 산들은 어둡고 우울하고 쌀쌀맞고 위험했다.  나는 항상 서쪽을 무서워하고 동쪽을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거의 평지를 달리던 파인캐년 로드는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비포장도로로 바뀐다.  가끔씩 지나는 농부들의 트럭에  진흙과 자갈이 단단히 다져진 도로는 도톰한 사이클로 크로스 자전거의 타이어로 달리기에 적당하다.  골짜기에서 시작한 길이 어느새 능선에 올라 붙는다. 고개 마루를 넘어서면 골짜기 전체가 캠프 헌터 리겟 (Hunter-Liggett)에 속한 땅이다. 군대소유의 땅이건만 들어오지 말라는 팻말은 보이지 않는다. 이 부대는 미국육군예비군의 전투지원 및 전투근무지원 부대라고 알려져 있다.

부대 사령부와 마주한 곳에 후니페로 세라의 동상이 지키고 있는 미션 산 안토니오 데 파두아 (Mission San Antonio de Padua)가 있다.  떡갈나무  골짜기(Valley of the oaks)라고 불리우는 이곳에 세라가 들어온 것이 1771년 이었다.  떡갈나무가 많은 곳이니 도토리를 채집해서 생활하는 원주민들도 많았을 것이고 이 독실한 가톨릭 수사에게는 영혼수집의 최적입지로 보였을 것이다.

미션을 출발하여 떡갈나무 사반나 지대를 통과하는 평평한 포장도로는 아름답고 평화롭다.   로드 파드레스 국유림 (Los Padres National Forest)으로 들어가면서 길의 이름이 인디안스 로드(Indians Road)로 바뀐다.  길은 산타 루시아 산맥의 최고봉의 서쪽 사면을 지난다.  이 산에도 유명인사의 이름이 붙어있다 - 후니페로 세라봉(Junipero Serra Peak).

남쪽으로 흐르던 개울이 끊어지고 물이 북쪽으로 흐르기 시작하면 산안토니오강(San Antonio River)과 아로요 세코(Arroyo Seco River) 강의 분수령을 넘은 것이다.  분수령을 지났지만 오르막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산안토니오쪽은 평평하고 넓은 계곡이지만 아로요 세코쪽은 험준한 협곡이다.  아로요 세코 강은 출발부터 계곡을 후벼파며 아래로 내려가고 자전거길은 협곡을 피해 산 위로 오른다. 아로요 세코는 스페인어로 마른 강이라는 뜻이지만 이름에 걸맞지 않게 상류에서는 일년내내 풍부한 수량을 유지한다.  아로요 세코가 말라붙는 것은 살리나스 밸리에 가까워지면서 강물이 자갈과 모래 아래로 스며들어 지하로 흐르기 때문이다.  

포장도로 끝의 캠프그라운드를 지나면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이 비포장길을  타고 에스콘디도 (Escondido)캠프그라운드까지 프리어스를 몰고 온 커플에게  운전할만 하더냐고 물었다. 한 군데서 바닥을 긁은 것을 빼고는 문제없었다고 한다.  

에스콘디도를 떠나면 도로에  차단기가 내려져있고 산사태로 인해 길을 폐쇄했다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차단기 이후의 도로는 풀이 웃자라 싱글트레일로 변했다. 몇번의 스위치백을 거쳐 고도를 올려놓으면 도로는 해발 900미터에서 등고선을 따라 산의 골과 능선을 굽이친다. 험상궂은 산타 루시아 산맥의 풍경이 펼쳐진다.  조금 전까지 작은 시냇물이었던 아로요 세코 강은 어느새 까마득한 발아래 협곡의 하얀 포말로 바뀌었다.

도로가 아로요 세코 계곡으로 하강을 시작하면서 가파른 내리막이 시작된다. 스위치백 도로는 절벽 같은 급사면을 뱀처럼 감으며 굽이치다 협곡의 절벽 위에 선반처럼 걸린 도로를 지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내리막을 다 내려오면 아로요 세코 캠프장이 나오고 강과 나란히 달리는 포장도로를 따라 살리나스 밸리로 내려간다. 그린필드(Green field)의 광활한 포도밭을 만나면 남쪽 킹시티를 향해 방향을 튼다.

킹시티까지 돌아가는 길은 끝없이 펼쳐진 채소밭이다.  대부분은 상추. 미국에서 소비되는 상추의 90%이상이 캘리포니아에서 나오고 캘리포니아 상추의 대부분이 여기서 나온다. 겉으론 말라붙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살리나스 강은 자갈과 모래의 퇴적층 아래로 스며들어 풍부한 지하수층을 만들어주어 거기서 퍼올린 물이 살리나스밸리를 온통 뒤덮은 채소밭을 적셔준다.

소설 에덴의 동쪽에는 아담 트래스크가 냉장 상추 수송 사업을 처음 시작한 것으로 그려진다.  한겨울의 뉴욕사람들에게 대륙횡단철도를 통해 신선한 캘리포니아의 상추를 팔겠다는 것이었다. 트래스크는 얼음공장을 사들인다. 열차 여섯량에 얼음과 함께 실어보낸 살리나스의 상추는 시에라의 눈사태로 인해 새크라멘토에서 이틀을 머물고서야 시에라 산맥을 넘는다. 미국 중서부 지역의 이상온난기후로 얼음이 녹는 속도는 빨라지고 시카고에서 주문 착오로 5일을 허비한 후에 뉴욕에 도착했을 땐 화물이 모두 못쓰게 되어있었다. 아담 트래스크는 이 사태로 큰 재산을 날린다.

소설의 아담 트래스크는 실패했지만 살리나스 밸리가 미국의 '샐러드 그릇(salad bowl)'이라 불리게 된 것은 얼음공장과 채소농장의 결합이 성공한 덕분이었다. 아이스버그 상추(Iceberg Lettuce)는 살리나스 밸리의 상추에 얼음을 채워 열차로 수송하면서 붙은 이름이다.

채소밭을 타고 남하하는 길은 자전거라기 보다는 마치 범선처럼 바람에 실려가는 육상 세일링이다.
"오후가 되면 마을 위로 바람이 휘파람소리를 내며 불었다. 농부들은 마일에 걸쳐 유칼립터스 방풍림을 심어 쟁기질한 흙이 날려가는 것을 막았다."
한낮의 햇살로 달구어진 내륙에서 발생한 상승기류는 태평양으로 터진 밸리북쪽 부터 바다의 공기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다.  저녁 일곱시가 되었어도 살리나스 밸리의 북풍은 여전히 강하다.  이 바람이 등을 떠밀면 평지에서 페달을 돌리는 시늉만 해도 시속 50km를 넘어버리기 일쑤여서 혹시 속도계가 잘못된 것이지 다시 보게 된다. 바람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잦아들어 "한숨같은" 미풍이 될 터였으나 초저녁을 지나 우리가 킹시티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는 바람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파인캐년 정상에서 되돌아본 살리나스 밸리


미션 산 미구엘 (Mission San Miguel)에 걸려있는 이 땅을 거쳐간 정치 권력들의 깃발들.
가까운 곳으로부터 멕시코 공화국, 스페인 왕국, 캘리포니아 공화국, 미합중국.

미션 산 미구엘에 있는 후니페로 세라의 동상
미션 산 안토니오 데 파두아 (Mission San Antonio de Padua)

미션의 성당 내부 (앞쪽)


성당 내부 (뒷쪽)

미션 산안토니오의 안마당에 핀 캘리포니아 파피(California poppy)
떡갈나무 사반나 지대를 지나는 Del Venturi Road


봄에 물오른 가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떡갈나무

아로요 세코 로드로 오르는 오르막
산사태에 덮힌 아로요 세코 로드
아로요 세코 강
살리나스 밸리의 포도밭 건너편 석양노을에 비추인 가빌란(Gabilan) 산맥

주제곡 전광용 색소폰 버젼